반야, 육도에서 동쪽으로

Naru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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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 육도에서 동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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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스무 살 우치하 사라다는 우즈마키 나루토의 시신을 데리고 50여 년 전으로 향했다. 고의는 아니었다. 적어도 그 50이란 숫자만은 말이다.어찌 되었는지, 갑작스레 몸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또 불타 버린 것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에도 –나름대로- 그가 뜻한 바는 없었다.⋯누가 믿겠냐마는.
Note
반야 般若 - 대승 불교에서,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고 불법을 꿰뚫는 지혜. 온갖 분별과 망상에서 벗어나 존재의 참모습을 앎으로써 성불에 이르게 되는 마음의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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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 사항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닷새. 오늘로 두 달에서 닷새째였다. 상현달이 걸린 새벽, 사라다는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따라 진원을 알 수 없는 작은 소리가 계속해서 귀에 잡혔기 때문이다. 

계속 뒤척이는 모습을 고양이가 역시 의중을 알 수 없는 눈으로 지켜보았다. 귀까지 막아 보던 사라다는 순간 역정이 일었으나, 차마 발산할 힘도 없어 그대로 사그라들었다. 

한숨을 삼킨 끝에 사라다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웅크렸다.

‘정말로 미쳐 가는 모양이야.’

그는 눈을 찡그리듯 감았다. 차라리 자학하는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조금씩 정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사라다는 이제 조금 안심⋯하려 했지만, 곧 잔혹한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지금 잠드는 중이 아니었다.

‘심상 세계는 생각도 안 했는데, 갑자기 왜?!’

사라다는 말 그대로 끌려 들어갔다. 영문 모를 소리는 계속해서 귓속에 맴돌았다. 게다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떨어지며 빙글빙글 돌던 몸이 어느 순간 멈췄다. 

스무 살 사라다는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대체 무슨 까닭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여지껏 그를 괴롭히던 소리. 그 근원 하나만이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명백히 알 수 있는 방향에서, 소리가 그의 신경을 잡아챘다. 사라다는 뒤돌아보았다.

불티가 튀고 있었다. 

‘잠깐만.’

그는 즉각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이거였어?’

한순간 사방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이 밝아졌다. 사라다는 끌려갔듯이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이불에 둘둘 싸인 몸이 잠시 시야를 잃고 혼란에 빠졌다. 사라다는 잔뜩 몸부림치다가 굴러떨어질 뻔했으나, 팔걸이에 부딪혀 막히면서 멈췄다. 사라다는 몸을 비틀면서 아픈 목에 신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그러나 조금 지나 아픔이 가시고, 사라다의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그가 일어났다. 

온갖 감정이 사라다를 덮쳤다. 개중에는 두려움도 있었다. 신의를 어긴 자로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재회에 기뻐하는 것은 스스로 몹시 부끄러웠다. 둘이 직접 만나면 사이에 또 어떤 말이 오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시작을 엿볼 수 있었다. 무력하게 있지 않아도 되었다. 훗날 있었던 그 많은 이들의 염원을 그저 곱씹기만 하지 않아도 되었다.

사라다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고양이는 방금 그 상황 때문인지 어느샌가 침대 바로 옆으로 다가와 서 있었다. 

사라다는 목을 피고 어두운 눈구멍 속 검은 동자를 곧게 마주 보았다. 수축되어 있던 행동이 갑작스레 커지자 고양이는 의문을 품고 어린 몸을 죽 응시했다.

사라다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하나하나 형태를 만들어 가면서,

문장을 완성했다.

[알아보죠?]
“너⋯,”

고양이가 헛웃음을 지었다. 

“방법이 있었군.”
[외지에 혼자 떨어뜨려 놓고 그런 식으로 하루 내내 쳐다보면, 성인군자도 말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들어요.]
“불만이 많았나 본데. 여태 어떻게 참았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래서 이제 전부 털어놓겠단 뜻이냐?”
[이젠 해야죠. 그런데 지금 이대로는 아녜요. 조건이 하나 있어요.]
“무언데?”
[나랑 같이 들어온 그분, 우리 삼촌이에요. 삼촌이랑 같이 안 하면 저도 안 해요.]
“삼촌? 그 남자는 아직 눈을 안 떴어. 데려다줄 순 있어도 같이 말은 못 하고, 여기서 또 기다리겠다면⋯.” 

분위기가 일순 살벌해졌다. 고양이가 조용히 말했다.

“일이 곤란해질 텐데.”

그러나 사라다는 미소지어 보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말을 이어갔다.

[걱정 마요. 안 그래도 방금 일어나셨네요.]
“무슨 소리를 하지?”

사라다는 본인의 머리를 툭툭 쳐 보인 뒤 대답했다.

[우린 머리가 좀 특이하거든요. 일부러는 아니었는데, 뭐⋯.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 필요한 사람들 부르고, 난 삼촌께 데려다줘요. 그러면 다 말할게요. 원하던 일 아닌가요?]

고양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사라다가 다시금 웃으며 말했다.

[괜히 뿌리치진 말고요.]

그리고 덧붙였다.

[다들 우리 얘길 알고 싶었잖아요.]

 

 


그는 아주 긴 곳을 지나왔다.

아주 맑고 또렷하다. 그가 눈을 뜨며 가진 첫 번째 감상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달콤한 낮잠 시간을 가진 것만 같았다.

‘보통은 이렇게 개운한 경험이 아닐 텐데.’

그가 생각했다. 특히 손가락이 가벼웠는데, 과장을 보태 지금 바로 인술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날렵하게 움직였다. 나루토는 누운 채로 오른팔을 들어 올려 쉼 없이 손가락을 앞뒤로 꺼떡댔다. 

그의 오른팔이라니.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문장이었다. 되살아나 처음 반나절을 보내고, 잠시 꿈속을 돌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생각했건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스무 해를 돌고 돌아서 결국 다시 열여섯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그때와는 아주 달랐다. 이곳은 그 20여 년 전도 아니고, 사스케를 되돌리려 애써야 할 일도 없고⋯.

그리고 쿠라마도 없었다. 그는 잠들기 전 심상 세계를 계속 둘러보며 확인했고, 방금 깨어나기 직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냉정할 정도로 공허하고 깨끗했다.

의아한 점은 있었다. 바로 그가 일어나는 순간부터 느낀 차크라였다. 이상하게 낯설긴 했으나, 분명 미수의 그 거대하고 위압적인 차크라였다. 적어도 나루토는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정신이 맑아지고 나니, 그건 절대 쿠라마의 차크라일 수 없었다. 그 ‘이상하게 낯선’ 느낌이 들어맞았다. 

형태나 감각은 얼추 비슷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특히 크기는 명백히 쿠라마에 미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그 차크라는 나루토 자신을 원천으로 순환하고 있었다. 외부와 내부 어디에도 무언가와 이어졌단 느낌은 없었다. 오로지 나루토뿐이었다.

의문은 다시 이어졌다. 아무리 경황이 없다 한들, 서로 확연히 다른 사람의 차크라가 미수의 차크라와 잠시나마 혼동될 수는 없었다. 

또 이 차크라는 못해도 일반적인 닌자의 수십 배를 가뿐히 뛰어넘을 만했다. 아무리 나루토가 태어나길 방대한 차크라를 가졌다곤 해도 이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나루토의 차크라는 절대로 이렇지 않았다. 나루토가 그 안에서 얕게나마 본래 자신의 느낌을 찾아내기까지는 약간 시간이 걸렸다.

나루토와 쿠라마 모두의 모습이 있지만, 둘 중 그 누구도 아니다. 그래 이 차크라는⋯, 두 인물을 한데 합하여 새롭고도 다른 종을 만들어낸 것만 같았다. 나루토는 어딘가 끔찍한 기분에 이불을 꽉 부여잡았다.

나루토는 그 오른팔을, 어려진 몸을 생각했다. 이건 그가 쿠라마와 운명을 함께하던 때로 돌아온 탓일까?

그런데 쿠라마는 이미 없었기 때문에?

나루토는 눈을 감았다. 그래. 쿠라마도 없고, 숱한 그의 사람들도 없고⋯.

‘아니야.’

아니다. 나루토는 눈을 떴다.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의 옆에 아직 한 명은 남아 있었다. 나루토는 몸을 일으켰다. 굳은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잊었다.

그리고 나루토는 고개를 돌렸다.

우치하의 사라다가 아직 거기에 있었다.

사라다는 예상외로 덤덤하게 움직였다. 두 손을 모은 채 조심스레 그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하지만 나루토의 눈을 보자마자, 사라다는 괴로운 듯 찡그린 표정을 짓고 옆으로 물러섰다. 

나루토는 이유를 몰랐기에 사라다를 잡을 수 없었다. 그사이 문을 열고 모여 서 있던 닌자들이 뒤이어 들어왔다. 나루토는 눈을 살짝 위로 올려 그들의 모습을 훑었다. 마지막까지 전부 다 평범한 의료 닌자인 듯했지만⋯,

그 일행 안에 3대 호카게가 포함된 것은 상당히 뜻밖이었다. 나루토는 자못 놀랐으나 겉으로는 숨기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히루젠이 아무 말 없이 병실 안에 놓인 작은 의자 위로 걸터앉고, 그가 대동한 다른 닌자 둘이 옆에 가 섰다.

일행 가장 앞에 서 있던 담당 닌자가 나루토의 눈을 확인했다. 그가 제일 먼저 입을 뗐다.

“혹시 말이 나와?”

나루토는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연히 긍정하려 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비집고 나온 것은 명확한 음절이 아니라 바람 빠지는 힘없고 작은 소리였다. 나루토의 눈이 커졌다.

“연기를 많이 마셔서 후두가 아예 의미가 없을 만한 상태였어. 수술은 잘 됐지만 다시 말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거야.”

담당이 설명했다. 그는 무감각한 눈으로 물었다.

“애는 수어 할 줄 알던데, 당신도야?”

나루토는 즉각 손을 들어 대답했다.

[그래.]
“좋아. 이쪽은 그래도 좀⋯ 편해지겠네.”

담당은 피곤한 얼굴로 다른 닌자들에게 손짓했다. 그들은 나루토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며 확인했다. 손상은 거의 없었다. 그들이 물러나고 담당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어떻게 치료를 했는지, 얼마나 많은 부분을 새로 바꾸어야 했는지. 이야기는 눈으로 흘러갔다. 사라다가 차마 보지 못했던 그 눈으로.

‘무슨 일이 있었지?’

나루토는 주의를 집중했다. 담당이 말하면서 옆에서 거울을 든 다른 닌자의 손이 들어왔다.

“왼쪽 눈꺼풀이 녹아서 눈에 들러붙어 버렸어. 그래서 거기도 이식을 해야 했고. 그런데,”

하얀 붕대 사이에서 반투명한 푸른색과 진하게 깊은 검은색이 함께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감스럽지만 푸른 눈은 워낙에 흔치 않아서.”

나루토는 두 상반된 원에서 멀어질 수가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잡아내기 어려웠다. 

푸른 눈은 아버지의 눈이고 아이들의 눈이었다. 그와 그가 있는 곳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한쪽은 남았지만⋯, 한쪽은 어디로 갔을까.

나루토는 거울을 물렸다. 담당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경과는 아주 좋아. 어디 거부 반응 보이는 곳도 없고, 이유는 우리도 궁금하지만 회복 자체도 빨라. 거의 여섯 배였던 거 알아? 사실 얼굴은 이미 최종 재건해도 될 정도인데, 설명을 들을 수가 없으니 가만히 있었지. 이제 준비할 거야.” 

물론 이리 말하긴 하지만, 사진 한 장 없는 와중에 말 그대로의 재건은 불가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았다. 애초에 나루토 역시 제대로 말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외모는 워낙에 특색 있었으니 말이다. 

정말로 모든 것이 바뀐다. 나루토는 다시 한번 되짚었다. 분명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 각오가 필요했다. 나루토의 머리가 아래로 기울었다. 

“그래도 완전히 똑같이 돌아갈 수는 없어. 그건 알지?”
[어차피 신경 안 써. 알아볼 사람도 한 명뿐이고, 닌자 일에 얼굴이 별 대수던가.]

나루토가 대답했다. 

“그래, 낙관적이라 좋다 해야 하나. 근데 일단 이건 좀 나중으로 하고, 지금 제일 중요한 일이 따로 있어.”

중요한 일? 나루토가 갸웃거렸다. 담당은 따로 더 설명해주지 않고 지쳤다는 듯 손만 휘휘 내저었다.

“당신 조카한테 물어봐. 지금 이건 다 그 애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

그리고 함께 온 의료 닌자들을 데리고 나가 버렸다.

문이 닫히고, 나루토는 사라다에게로 눈을 돌렸다. 사라다는 정말이지 심각했던 나루토의 상태를 듣고 풀이 죽어 잔뜩 수그리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침대를 두드려 사라다의 시선을 이끌었다. 사라다가 고개를 들자 나루토는 손짓으로 사라다를 가까이 불러냈다. 

조카라. 이제 그는 정말 사라다의 삼촌이 되었다. 이 아이가 그에겐 조카이고 유일한 가족이었다. 원래부터 반쯤은 틀린 말이 아니기도 했지만⋯.

나루토는 힘을 뺀 부드러운 손길로 사라다의 손을 감싸 토닥였다. 사라다는 당황했으나 곧 복잡한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고요한 병실 안에 반복되는 포근한 소리 하나만이 머물렀다.

히루젠은 한참 전부터 그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대동한 닌자들에게 고갯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한 명은 작게 마련된 탁자 쪽으로 가더니 종이 뭉치와 연필을 꺼내어 자리 잡고 앉았다. 한 명은 히루젠이 의자를 들어 두 사람에게 다가가자 그 뒤를 따랐다.

히루젠은 헛기침을 한 뒤 나루토의 침대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쏠렸다. 눈높이가 비슷해지자 그가 말했다.

“나는 나뭇잎 마을 3대 호카게 히루젠이라고 하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나루토와 사라다가 즉시 같이 인사했다. 3대 호카게 사루토비 히루젠. 그것도 이제 막 마흔을 넘긴 때. 그를 마주한 두 사람의 감상은 제각각이었다.

‘할아범, 엄청 오랜만이네. 완전 젊었잖아?’

나루토에게 히루젠은 조금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는 너그럽고 친절한 할아버지였고 인망 좋은 지도자였다. 그는 평화와 안정을 원했고, 또 잠시나마 가져왔다. 나루토는 그를 본받길 바라 히루젠의 신조를 따르는 호카게로 살았다. 

하지만 동시에 어른이 되어 짚어 보았을 땐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실망하게 되는 점도 분명 존재했다. 그가 포기한 어떤 것은 모두 셀 수도 없는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다. 그 안에는 나루토 본인은 물론이고 그가 살면서 마주했던 많은 고통 어린 삶이 끼여 들어가 있었다.

결국 둘 다 히루젠이었다. 분리할 수는 없었다. 히루젠은 누군가를 저버렸고 동시에 누군가를 지켰다. 나루토가 히루젠을 흠모하면서 또한 복잡한 마음을 가진 것과 같은 원리였다. 

그는 가끔 집무실 벽에 걸린 히루젠의 사진을 보았다. 그 주름진 얼굴 속 연달은 전쟁과 수십 년 세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다. 그건 지금도 변함없었다. 기억도 흐릿한 시절 떠나보낸 사람을 다시 마주하고야 말자 온갖 감정이 나루토 안에서 일렁였다.

‘3대 호카게를 직접 볼 날이 올 줄이야. 늘 얘기만 들었는데⋯. 그나저나 종잡기가 어려운걸.’

반면 사라다에게는 3대 호카게에 관해 그런 깊은 인식이나 생각 따위가 전혀 없었다. 큰 전쟁과 사태가 계속해서 겹치는 와중에도 마을을 그럭저럭 잘 이끌었고, 이미 오래전 타계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의 과거사는 특성상 기밀과 연관 있거나 아예 개인사로서 기록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교육을 하더라도 내용이 매우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사라다가 히루젠에게 가진 마음이라곤 그간 감시받고 옥죄이는 기분에서 기인한 작은 경계심뿐이었다. 히루젠이 자세를 낮춰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도 그저 뭔가 이상하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우선 이 자리를 빌려 사과를 전하겠네. 소용돌이 쪽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일은 명백히 우리 나뭇잎 마을의 실수였어. 자네들이 겪은 그 모든 일에도 유감을 표하네.”

히루젠이 말했다. 나루토는 당연히 소용돌이 멸망의 진상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그래도 덕택에 목숨을 구했으니 다행입니다.]

히루젠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뜸 들이며 말했다.

“참으로⋯, 정말 미안하게 됐네. 전부 다.”

히루젠이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이윽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오늘 이리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네들에 관해 알기 위해서라네. 자네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이야. 아무래도⋯, 소용돌이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보니, 기록물을 찾을 수가 없어서 말일세.”

그 말을 들은 즉시 사라다의 작은 몸이 바짝 굳었다. 살짝만 보아도 두 눈에 긴장이 역력했다. 히루젠은 목소리를 더욱 부드러이 하면서 말을 이었다.

“물론 기분이 썩 좋진 않을 걸세. 의심받는단 생각도 들겠지. 마음까지 강요할 순 없단 건 나도 잘 안다네. 또 무조건 그리 바랄 뜻도 없어. 다만 자네들에게 해를 주려는 목적은 추호도 없음을 말하고 싶네. 사루토비 일족 히루젠의 이름을 걸고 말일세.”

그를 끝으로 히루젠의 입은 닫혔다. 나루토가 작은 손을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사라다는 잠시 고민하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고개가 위쪽으로 향했다.

검은색과 푸른색이 마주보고, 나루토가 가볍게 끄덕였다. 사라다는 천천히 손을 놓고 히루젠을 향해 돌아서 섰다. 사라다의 손이 올라갔다.

[시작하세요.]
“고맙네.”

히루젠이 엷게 웃었다. 그가 옆에 선 닌자에게 손짓하자, 닌자는 둘에게 문서와 연필을 각각 하나씩 전했다. 칸을 복잡하게 나눈 문서는 이름을 비롯해 온갖 사항을 상세하게 적게 되어 있었다. 

나루토와 사라다는 긴장을 세우고 연필을 쥐었다. 천하의 3대 호카게를 앞에 두고, 서로의 답을 참고하는 걸 들키지 않으면서도 믿을 만한 과거사를 창조해 내야 한다. 그들이 겪은 웬만한 과제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축에 들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나루토가 생각했다. 히루젠은 퍽 관대한 사람이다. 지금 이때만 잘 넘기면 적어도 드러나는 의심에 마음을 졸일 일은 없을 테다. 하지만 수상쩍은 점이 하나 보이기만 해도 입장은 상당히 난처해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경직된 공기 속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목에 식은땀이 맺히기 직전 사라다가 먼저 연필을 내려놓았다. 뒤이어 나루토도 끝을 냈다.

닌자가 문서를 가져가 히루젠에게 올렸다. 히루젠은 각각 적힌 내용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이윽고 그가 내용을 확인하듯 물었다.

“숙질(叔姪) 사이. 이름은 숙부가 사토 카키네로 열여섯, 조카가 사토 카에리로 여덟 살. 둘 다 하급 닌자. 카키네는 환영분신술을 충실히 익혔으나, 카에리는 정식 닌자 승급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맞나?”
[그렇습니다.]
“가족이 모두 작고하셨을 줄은 몰랐네. 유감일세.”
[오래전 일입니다. 제가 숙부라도 나이가 차지 않아 그런지 다들 끝까지 걱정하더군요. 그래도 그 난리 중에 조카를 잃어버리지 않았으니 다행이지요.]

나루토가 사라다의 손을 잡았다. 사라다는 멈칫했다가 따라서 응했다.

“그래, 참으로 다행일세.” 히루젠이 맞장구쳤다.
“그런데 혹 중급 닌자 시험을 치른 적이 없나? 자네의 이름을 영 들어보지 못한 것 같군.”
[예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시험에 나설 염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최근에 와서야 차차 괜찮아졌던 탓에⋯. 그렇습니다.]
“짧게 봤지만 잠재력이 느껴지는데 말일세. 분명 이제는 쭉 잘할 게야.”
[감사합니다.] 나루토가 가볍게 숙여 보인 뒤 말했다.
“그리고, 우즈마키 일족과는 관련이 있는지 물어도 되겠나?”
[전 소용돌이 마을에서 그 사람들이랑 같이 살았을 뿐이에요.] 사라다가 단호히 답했다.
[일단 저는 확실히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삼촌은⋯, 잘 모르겠네요. 의붓아들이시거든요. 우리 집안에 오시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도 없고요. 그래도 검은 머리이시니까 아니겠죠. 그 사람들은 전부 붉은 머리 아닌가요?]

히루젠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 말대로 우즈마키 일족의 특징은 붉은 머리가 맞네. 검은 머리는 적어도 들어본 적은 없어. 그래⋯.”

히루젠이 잠시 고민하는가 하더니 말했다.

“사실 카키네, 나는 자네를 꽤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네. 자네의 차크라가 아주 특이한 것을 느꼈기 때문일세. 그런 차크라는 나름대로 잔뼈가 굵은 닌자들도 접한 바가 없어. 자네도 알고 있겠지?”
[예. 이유를 알 순 없지만, 보통 사람의 차크라라 말하는 것은 저와는 확실히 다르더군요. 어떤 힘이 있어 저를 빠르게 회복시켜 주기도 하고요. 일단 명백한 저 자신의 차크라임은 틀림없습니다.]
“역시 그렇군. 자체로 치유력을 가진 차크라는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흔한 게 아닐세. 자네에겐 분명 저력이 있어.”

이어서 히루젠이 사라다에게로 시선을 옮겨 말했다.

“쿠나이와 와이어로 만력쇄를 본딴 무기를 만들었다고? 실물이 궁금해지는군. 후에 꼭 볼 수 있었으면 하네.”
[얼마 안 있으면 충분히 익숙해질 정도로 보실 거에요.]
“그래, 또 그렇겠군.”

히루젠이 눈을 굴려 창문 밖을 확인했다. 해가 내리쬐어, 이제는 새벽 공기의 흔적마저 충분히 다 거두어졌을 때였다. 연필을 잡고 주의를 거두지 않는 충실한 닌자 앞에는 새까만 속기록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오늘은 이 정도까지면 충분하다.’ 히루젠이 생각했다.

“이만하고, 두 사람 모두 고맙네. 나는 여기서 일어나지. 쉬게나. 그리고 카에리, 자네는 방을 옮겨 주라고 할 테니 숙부와 같이 기다리게.”

히루젠은 닌자에게 손짓하여 함께 병실 밖으로 사라졌다. 나루토와 사라다는 함께 숙여 인사했다. 무거운 발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이제야 겨우 한시름 놓는 기분이었다. 지나치게 긴장했더니 오히려 풀려도 한숨은 나오지 않고 그저 멍했다.

나루토는 신경을 집중해 등 뒤 벽에 기대어 선 인물의 낌새를 살폈다. 조용히 물러나 존재감이 없던 감시역은 다시 눈길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었다.

이대로는 대화 자체가 불가했다. 나루토는 사라다를 이끌어 좁은 침대 위에 먼저 눕혔다. 그리고 자신도 살짝 몸을 비틀어 함께 누웠다.

겉으로 그들은 지쳐 잠드는 듯이 보였다.

“어때, 환해지고 보니까 나름대로 멋지지 않아?”
“⋯그러네요.”

암흑만 가득하던 심상 세계가 밝아져 그 본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하늘인지 벽인지 분간도 할 수 없는 너른 위, 얕은 물이 그득하되 몸을 적시지 않는 아래. 짙지 않아 몽롱한 공기가 몸을 나른하게 풀었다.

사라다는 눈을 뜬 순간 그들이 등을 맞대어 앉아 있음을 알고 안도했다. 앞으로 직접 보이지가 않자 어쩐지 용기가 생겼다. 사라다가 나루토에게 말을 걸었다.

“생일 며칠로 쓰셨어요?”
“9월 16일.”
“2월 27일이요. 혹시 무슨 의미 있으세요?”
“아니.” 나루토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요.”

두 사람이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메아리가 광활한 곳을 따라 번져 나갔다.

사라다는 장갑 아래 길게 뻗은 두 손, 태양을 형상화한 만화경 사륜안을 확인하고 말했다.

“여긴 다 그대로네요.”
“그대로지. 현실은 현실이고, 여긴 이름대로 마음을 드러내거든. 지금은 이미 우리도 많이 변했지만, 우리가 스스로 그때에 맞춰 생각하면⋯, 여기선 언제나 그 시절인 거야.”

사라다는 머리를 뒤로 기울였다. 호카게의 망토 목깃이 피부를 간질였다. 

그 말대로, 아직 그대로였다. 여전히 영원할 7대 호카게였다. 푸른색 두 눈이 아름다운 금빛이었다.

“절 다시 보겠다고 하셨던 거,” 사라다가 말했다.
“진심이세요?”
“내가 네게 한 말은 늘 진심이었어. 이거 하난 확실해.”
“뭐든 간에, 네 마음을 헤아린다며 억지로 내뱉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럴 필요도 없었고. 왜냐면 난 항상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나루토가 말했다. 사라다는 고개를 숙였다.

“제가⋯,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아요.”
“무슨⋯.”
“제가 지금 이리 태평하게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기실 7대 님께는 제가⋯.”

사라다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무의식적으로, 무게를 재고 있거든요. 이⋯, 시간을 돌린 일, 그때 다른 사람들하고, 7대 님 일을 두고요. 그래서 급한 일은 그 앞이라고, 급한 일은⋯.”

사라다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죄송해요.”
“사라다, 잠시만-”

뒤돌아보려던 나루토가 그대로 엎어졌다. 등을 받치던 무게가 갑자기 없어진 탓이었다. 나루토는 대자로 누운 채 눈을 굴려 상황을 살폈다.

“이런⋯.”

어느샌가 그곳에는 나루토 한 명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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