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2
점심 시간(상담사가 사무실을 떠나는 단 한 순간인)을 이용해 그녀의 사무실을 뒤지러 간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왜냐하면 아무 것도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상담이 유용했기 때문이지. 의사의 컴퓨터를 해킹하느라 바쁜 루트의 곁에서 쇼가 속으로 으르렁댔다. 쉬츠는 컴퓨터 보안에 있어서는 해롤드보다 더 강박적인 것 같았다.
"상담 재밌더라."
루트가 웃었고, 그녀의 얼굴에 모니터로부터 나온 빛이 어른거렸다. 쇼는 아무런 할 일도 없이 서있는 것 보단 낫다고 생각해서 뭐라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너한테나 재밌었겠지."
상담 내용을 떠올리며 쇼가 불평했다. 자신이 당한 심문들 중 몇 번은 이 상담보다 즐거웠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그럼 괴로운 부분은 잠시 놔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볼까요?"
루트가 쇼를 당장이라도 찔러버릴 듯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 쉬츠가 제안했다. 그러나 쇼에게는 그것이 수류탄이 바로 앞에서 터지는 것과도 같게 느껴졌다.
"처음부- 뭐라고요?"
쇼가 루트를 거의 밀다시피 하며 끼어들었다.
"이거 재밌겠군요."
해롤드가 말했다. 그는 이 모든 걸 즐기는 것이 분명했다.
"자, 두 분이 어떻게 만났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고양이만큼이나 얌전한 얼굴로 루트가 똑바로 앉았다.
"어- 음-"
루트를 처음 만난 시점을 떠올리며 쇼가 말을 늘였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예요."
금세 행복해진 루트가 끼어들었다.
"어어- 그건-"
"사민한텐 분명 말하기 쑥스러운 이야기일 거예요. 그녀가 절 처음 봤을 때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었거든요."
내내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루트가 말했다.
"변명하자면, 그녀도 덩달아 다른 사람인 척 했어요."
쇼가 사실을 명확히 했다.
"사민같이 멋진 사람을 두고 뭔들 안 해보겠어요?"
상한 우유같은 얼굴은 하고 있는 쇼에게 고개를 기울이며 루트가 변호했다. 쇼는 그 말에 손을 들었고, 그 일이 자신의 목에 달궈진 다리미가 닿을 뻔한 걸로 끝났다는 걸 상기했다.
"그 다부진 외모와 열정적인 눈빛을 가진 사람에게 말이에요. 내 영혼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죠."
루트가 상사병에 걸린 소녀 연기를 완벽하게 해내며 말했다. 쇼도 물론 루트의 영혼을 꿰뚫어 보긴 했다. 목에 주사 바늘이 꽂힌 채로. 쇼는 이 시점에서 루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우연이긴 했지만 우리 둘 다 아는 친구를 통해서 만났어요."
머신이 루트와 관련해서 이것저것 참견한 것을 떠올리며 쇼가 이야기했다.
"운명처럼요."
여전히 온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채로 루트가 맞장구쳤다.
"온종일 억지로 웃느라 얼굴에 경련 오는 줄 알았어."
상담사의 튼튼한 방화벽에 눈살을 찌푸리며 루트가 중얼거렸다. 비협조적인 쇼를 힘들게 달래며 상담을 하는 동안, 보안 시스템을 뚫으려 온힘을 다했으나 전부 실패했다. 강박증 있는 해커도 아닌, 그저 결혼 상담사일 뿐인 넘버를 상대로 이러는 것은 기분이 이상했다.
쇼는 이미 쓸 만한 것을 찾는 데 포기해서 도청장치라도 붙일 장소를 찾고 있었는데, 때마침 사무실로 돌아오는 상담사를 발견했다.
"어, 루트, 우리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뭐? 안 돼!"
지금도 충분히 빠른 타이핑에 더 속도를 내며 루트가 소리쳤다.
"가서 좀 붙잡고 있어 봐!"
"뭐?"
"빨리!"
쇼는 루트에게 이런 식으로 명령받는 것에 질려 버렸다.
"그렇게 우리가 만난 거죠!"
루트가 활기차게 웃었다. 그녀는 테이저와 다리미를 로맨틱하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전 첫눈에 반했었어요."
그녀가 마무리 지으며 쇼를 강아지 같은 눈망울로 바라봤다. 사랑으로 넘쳐나는 이 상황에 쇼는 속이 뒤집어질 듯 했다.
"이 사람이 절 점점 더 좋아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어요."
쇼가 뭐라도 말해야겠다 싶어 끼어들었다. 루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기대에 찬 눈으로, 다음에 이어질 말을 음미하기라도 할 것처럼 쳐다보았다.
"결국 좋아하게 되었죠."
그 말을 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면서 쇼가 말을 맺었다. 루트는, 물론 그 즉시 환희에 차올랐다. 슬프게도 이번 라운드도 루트가 이긴 듯 했다.
"어머, 정말 귀여우시네요."
자신의 노트에 무엇인가 적으며 쉬츠가 말했다. 쇼는 노트에서 글자 몇 개를 알아볼 수 있었다. 'A는 친절하지만 부담스러운 편이고 S는 그래도 같이 놀아줌.' 쇼는 그것에 속으로 웃었다.
"귀여운 만남없이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없죠."
의사의 컴퓨터에 무선 프로그램을 깔려고 애쓰며 루트가 대답했다. 의사는 여전히 무엇인가 적으며 미소 지었다.
"다른 주제로 옮겨가기 전에, 다른 질문 하나만 할게요. 침실에서는 어떤 편인가요?"
쇼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어피스 안에서 해롤드가 차가 목에 걸려 켁켁댔다.
"저는 이만 빠지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그로브즈 양이 잘 해낼 것 같군요."
연결을 끊으며 해롤드가 기침을 했다. 그래서 저런 주제가 핀치 씨를 쫓아내는 거군. 쇼가 머리에 새겼다. 반면에 루트는,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표정이 그녀를 수줍어 보이게 했다. 쇼는 절대 이번에는 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성생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여보?"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쇼가 물었다. 루트는 몇 초간 그녀를 보다가, 의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냥 엄청 좋아요, 의사 선생님."
이젠 쇼의 차례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이 주제를 놓치고 싶지 않은 쇼가 재촉했다.
"음, 종종 거칠어지긴 하지만 그녀는 그런 걸 좋아해요."
그 어느 때보다도 수줍고 민망한 얼굴로 루트가 대답했다. 순진한 아내 역할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해내는군. 쉬츠는 곧바로 쇼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동안 노트에 무엇인가 더 적었다. 쇼는 루트를, 가장 정신 나간 짓들을 정상적으로 보이게 하는 그녀를 쏘아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의사 선생님."
의사를 어떻게 붙잡아 두어야 할지 고민하며 쇼가 속삭이듯 말했다.
"사민-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네, 제 아내는 미쳐서 당신 컴퓨터를 해킹하고 있어요.
"상담실에 휴대전화를 놔두고 와서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정상적으로 들리길 바라며 쇼가 말을 늘어놓았다.
"사실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말할 게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쉬츠가 입을 열었고, 쇼는 루트가 조금이라도 빨리 일을 끝내길 빌었다.
"당신은 이 결혼에 행복해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당신 부인은 이 결혼 생활이 제대로 돌아가길 간절히 원하고 있고요- 그래서 저는 음-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개인 상담을 좀 하고 싶어요."
쉬츠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나한테 지금 작업거는 건가?
"쟤 지금 너한테 작업거는 거야?!"
이어피스를 통해 루트의 벼락같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쇼는 진정한 고문이 이제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