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
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앞에는 꽤 매력적인 의사가 '개인 상담'을 권하고 있었고 귀에서는 루트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루트는 반은 해킹하느라 바쁘고 반은 쇼에게 소리치며 협박하느라 바쁜 상태였다.
"사민, 생각도 하지 마-"
그러나 쇼는 이런 재미를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마음을 다잡았다.
"저야 좋죠."
할 수 있는 한 다정하게 웃으며 쇼가 말했다. 루트의 턱이 책상으로 떨어졌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좋아요! 오늘 7시 30분 어떤가요?"
상담사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때 그리로 갈게요."
사민이 확고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루트가 여기서 의사를 죽이거나 하지 않고 얼른 빠져나가길 바랐다.
의사가 떠난 뒤에 쇼는 루트를 찾았지만 어딨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게도 이어피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다리에서 집어던져버릴 거야."
루트의 위협적인 협박에서 쇼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상담 끝나고 나서 그러든가."
빌딩에서 빠져나오며 쇼가 일갈했다.
"네가 거기에 동의했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쇼를 뒤에 달고서 루트가 지하철로 쿵쿵거리며 들어왔다. 쇼는 루트가 돌아가서 불쌍한 상담사를 살해하지 않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동의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지쳐서 포기했다. 설명한다고 해서 듣는 루트도 아니었다.
"걘 의사잖아- 그건 비윤리적이라구!"
절대 주제를 바꾸지 않으면서 루트가 분통을 터뜨렸다.
"자꾸 그럴래, 루트? 다름아닌 네가 윤리에 대해 말하겠다고?"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고 쇼가 대답했지만 루트는 넘어가지 않았다. 쇼가 상담을 하겠다고 한 것에 매우 짜증이 난 듯했다.
"무슨 일입니까, 그로브즈 양?"
그들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다리를 절며 오면서 해롤드가 물었다.
"여기 있는 사민이 넘버가 집적댄다고 해서 그 넘버랑 '개인 상담'을 하겠대요."
사민의 동의에 마음이 상한 듯 루트가 불평했다.
"걘 너한테 작업을 걸었다고- 걔 사실 가해자일지도 몰라, 그냥 죽이자!"
루트가 총을 꺼내 장전하며 논리를 펼쳤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그로브즈 양- 아직까지 그녀는 누구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았습니다. 가해자일 리가 없어요."
당장이라도 넘버를 죽일 듯한 루트를 보며 해롤드가 황급히 설명했다.
"우린 아직 쉬츠 의사의 컴퓨터 파일을 제대로 보지 않았어요. 벌써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컴퓨터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하지만 방화벽이 두꺼운 걸로 봐서 분명 뭔가 숨기고 있다는 뜻이에요.
필사적으로 의사를 살해하고 싶은지 루트가 칭얼거렸다. 쇼가 의사와 대화를 하는 동안 모든 보안 시스템을 뚫었지만, 루트는 컴퓨터에서 어떤 것도 숨기고 있지 않다는 걸 발견했었다.
어쨌거나 해롤드는 상담사의 사무실로 걸어가서 그녀를 죽이자는 루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우린 그 의사에 대해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개인 상담을 하면 미션에 도움이 될까 싶었죠."
쇼가 끼어들었지만 루트는 그대로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 즉시 루트는 쇼의 코트 멱살을 잡아 얼굴 가까이로 잡아 당겼다.
"우리가 같이 해야 하는 일이야."
루트가 이 사이로 내뱉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고 죽일까 봐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쇼는 최대한 감정 없는 표정을 지었고 루트는 곧바로 벤치에 그녀를 내던졌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쇼 양의 편을 들어야 할 것 같군요. 어쩌면 쇼 양이 나중에 뭔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컴퓨터로 돌아가며 해롤드가 말을 맺었다. 루트는 결정되어 버린 모든 것에 불만스러워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벤치에 내던져진 상채 그대로 있는 쇼를 지나치면서, 루트는 그녀의 얼굴 앞에 총을 흔들었다. 쇼는 그걸 보고 루트와 함께한 일은 보통 누군가 총에 맞는 걸로 끝난다는 사실에 얼굴을 찡그렸다.
나가면서 루트는 리스와 부딪혔다. 그는 약간 불안해 보이는 루트를 보고 놀라 쇼에게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쇼는 눈을 굴리고서 뭘 먹으러 일어났다.
"둘이 왜 저래요?"
핀치의 책상으로 다가가며 리스가 물었다.
"결혼 상담때문에요."
해롤드가 평소와 같이 뻣뻣하게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리스는 그저 어깨를 들썩였다.
"자기들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쉬츠와의 저녁 면담에 쇼는 정시에 도착했다. 너무 좋아하는 티를 안 내려고 물론 옷을 차려입지는 않았다. 그녀는 루트가 빌딩 바로 앞에서 그늘 속에 서 있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너한테 손가락이라도 대면 - 그 여자 죽여 버릴 거야."
루트가 최후통첩를 했다. 쇼는 그저 툴툴거리고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상담사는 한 번 더 쇼를 반겼고, 쇼는 반쯤 기대하면서 소파에 앉았다. 그러나 의사는 그녀의 자리로 돌아가서 종이 몇 장이 더 늘어난 그녀의 노트북을 꺼냈다.
"자 사민, 말해 봐요- 어거스타와 왜 결혼한 거죠?"
그녀가 입을 열었고, 목소리에는 어떤 장난기도 없었다. 쇼는 곧바로 놀랐다.
"잠깐만요- 전 이게 개인 상담인 줄 알았는데요."
"예 맞아요- 그래서 부인께서 여기 없는 거구요." 의사가 미소 지었다.
"그럼 당신이 개인 상담이라고 한 건- 개인 상담을 의미하는 거였군요."
바보같이 들리는 걸 알면서 쇼가 물었다.
"그럼요, 다른 뜻이 뭐가 있겠어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의사가 농담을 했다.
"어머, 무례해라."
루트의 목소리가 이어피스를 타고 흘러 나왔고 쇼는 이 상담이 자신이 쉽게 동의한 것에 대한 형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루트가 이미 모든 카메라의 전권을 쥐고 이걸 즐기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쇼는 의사의 농담에 웃고 미소를 지으며 이 사이로 루트에게 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나? 난 그냥 의사한테 너랑 네 정신 건강에 관련된 기록을 줬을 뿐이야."
루트가 순진한 목소리로 엄청나게 행복하게 대답했다. 쇼를 고문하는 건 쇼 스스로도 즐기는 거였지만 사민이 자신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려고 용쓰는 걸 보는 것은 루트에게 매우 드문 보상이었다.
"그래서, 사민- 저는 그저 당신이 어째서 어거스타와 결혼했는지부터 시작하고 싶네요."
상담사가 필기할 준비가 된 채로 반복해서 말했다.
"그래, 사민- 너 나랑 왜 결혼했니."
루트도 물었다. 반대로 사민은 화형에 처해지려고 말뚝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난 아침 상담이 어렵다고 느꼈더랬지.
"왜 그런 걸 물으시나요."
사민이 마침내 질문에는 질문으로 답하라는 오랜 수법을 쓰며 말했다.
"당신은 부인께 많은 분노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래서 전 애초에 왜 그녀와 결혼했는지가 궁금했어요."
"넌 날 증오하는 걸 사랑하지, 안 그래 자기?"
"우리가 만났을 때부터 우리의 관계는 우위를 점령하려는 전쟁이었다고 하면 될 것 같네요."
쇼와 그녀의 '아내'가 사실 모든 걸 보는 인공지능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으려 애쓰며 간신히 대답했다.
"아내가 오늘 아침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다른 사람인 척 했다고 말했었는데, 전 그걸 나중에 갚아 줬어요."
루트를 총으로 쏜 일을 떠올리며 쇼가 앓는 소리를 냈다.
"부인이 당신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그런 거라고 봐도 될까요?"
"아뇨- 전 그냥 그녀가 저한테 한 것처럼 저도 그녀가 방심한 상태에서 그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상담을 헤쳐나가는 데 일정한 패턴을 찾으며 쇼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전쟁이란- 두 분의 관계에서 계속 지속되는 건가요?"
"관계는 무슨."
쇼가 이를 갈며 나직이 말했다. 루트는 그것에 소리내어 웃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겨우 5분이 지난 것에 신음을 하며 쇼가 대답했다.
"의사랑 관련된 뭐라도 찾고 있긴 한 거야?"
소파에 좀 더 몸을 기대며 고개를 옆에 뉘이고서 쇼가 최대한 나직하게 물었다.
"찾고 있어- 근데- 아직까진 별 거 없어."
"제가 당신의 병원 기록을 찾아 봤다는 걸 말씀드려야 하겠네요. 그리고 전 당신에 대해 놀랍다고도 할 수 있는 데이터를 찾았어요."
의사가 입을 열었고 루트는 즉시 성을 냈다.
"완전히 거짓말쟁이네. 내가 그 파일을 보내줬다구."
"전 그저 제 2축 성격 장애를 가진 당신이 어떻게 부인같은 분과 결혼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그 질문에 쇼가 한창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그녀는 복도를 가로지르는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
"방금 그거 봤어?"
쇼가 낮은 목소리로 루트에게 물었다. 물론 루트는 사무실 밖의 카메라도 확보한 상태였다.
"밖에 아무것도 없어- 이제 질문 그만 피하고 대답이나 하시지."
루트는 사무실로 곧장 향하는 카메라 피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다른 대답을 찾지 못하고 쇼가 마침내 대답했다.
"그것보다 더 잘할 수 있잖아."
"그래서 뭐- 네가 얼마나 끝내주는 아내인지 말하라고?"
의사와 조금 떨어졌기에 미친 사람 취급 당할 일 없이 루트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며 쇼가 중얼거렸다.
"그거랑 비슷한 거." 루트가 눈을 빛내며 웃었다.
"그래서 제가 맞다면- 그렇게 생각하지만-" 의사가 제안했다. "전 당신이 부인과의 일이 더 나아졌으면 하고 바란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가벼운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부인과의 관계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점들을 적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거 하기 전에 쟤를 안 죽인 게 참 다행인 것 같아."
"지금 다리에서 집어던져주면 안 돼?" 쇼가 빌었다.
"하지만 사민, 이건 미션을 위한 거잖아." 루트가 입을 비죽 내밀었다.
쇼는 더 이상 질문을 회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에 조금이라도 말이 되는 것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그녀는 이타적이에요."
루트가 죽음을 무릅쓰고 사마리탄 눈 아래에서 서버를 고치던 걸 떠올리며 쇼가 대답했다.
"와아아아."
이 질문을 빠져나가려면 몇 가지를 더 말해야 한다는 것에 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없을 때- 전 그녀가 그리워요."
쇼가 전통적인 이유들을 제시했다.
"네 말은 날 뱃속 회충 그리워하는 만큼 그리워한다는 말이지?"
쇼는 루트가 의사에게 말할 만한 것을 생각해내려 머리를 쥐어짰따.
"그녀는 윙크할 줄 몰라요- 그녀는 윙크라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그냥 아주 빠르게 눈을 깜빡인 것에 불과했어요. 그게 제일 웃겼죠."
"야! 나 윙크할 줄 알거든!"
"너보단 개가 윙크 잘할 걸."
"네?"
의사가 그 말을 들어 버렸고, 쇼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 때, 문 바로 앞에 누군가 서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루트, 밖에 누가 있어. 그가 보여."
곧바로 일어서 의사에게로 몸을 숙이며 총을 꺼냈다. 의사는 총을 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말을 잃었다. 루트도 남자를 볼 수 있었고, 카메라 피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현재 피드를 되찾기 위해 타자를 두드렸다.
"사민, 밖에 머신 건으로 무장한 남자가 있어. 그가 누군지 왜 있는 건지 모르겠어."
벌써 상담실로 향하며 루트가 황급히 말했다. 원래 멀리 있던 건 아니었다.
쇼는 방의 안전한 곳으로 의사를 잡아당기고 침입자가 총을 쏴대는 건 아닌지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좋아요 쌤, 밖에 무장한 남자 하나가 있는데, 뭐 아는 거 있어요?"
불편해하는 환자에서 강렬한 요원으로 탈바꿈한 쇼에게 아직 적응하지 못한 의사에게 시간도 주지 않고 캐물었다.
"데이브일지도 몰라요. 당신은 왜 총을 가지고 있어요?"
"데이브는 왜 가지고 있는데요?"
"걔가 데이브 아내한테 작업 걸었나 보지."
루트가 총을 챙겨들고 빌딩으로 행군하듯 걸으며 종처럼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몰라요- 스토커예요- 저랑 제 여동생을 평생 스토킹했어요- 그리고 그는 그녈 죽였죠. 또 그는 해커예요- 그래서 전 항상 제 파일들을 안전하게 보관해야만 했어요."
의사가 빠르게 이성을 상실해가며 설명했다.
"그게 누가 가해자인지 말해주는 군요."
문 앞으로 다가가서 크고 덩치 좋은 남자가 서 있는 걸 파악하고 쇼가 말했다. 평소의 그녀답게 쇼는 그를 공격했다. 그가 총을 쏘기도 전에 바닥으로 고꾸라지게 만들고 나서 몇 번의 주먹과 발길질을 해댔다. 쇼가 그의 목을 한창 조르고 있는데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데이브는 마침내 저항을 멈췄다.
"난 네가 왜 그냥 사람들을 쏴버리지 않는 건지 모르겠어."
루트가 여전히 총을 든 채로 사무실로 걸어 들어오며 웃었다. 쇼는 전혀 관심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안녕 의사쌤." 루트가 상담사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음 번에는- 얘 아버지를 주제로 상담하는 걸 추천해요."
쇼는 그 말에 곧바로 그녀를 쏘아보았고, 루트는 겁에 질려 앉아있던 의자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의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잠깐- 그럼 두 분은 부부가 아닌 거예요?'
"아니에요." 쇼가 툴툴거렸다.
"아참 그리고 의사쌤."
여전히 천사처럼 웃는 얼굴을 하고 루트가 입을 열었다. 의사의 팔에 탄환이 한 발 박혔다.
"얘한테 작업 건 대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