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
"전 저 여자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핀치."
"부부 상담의 전제 조건은 부부여야 한다는 것을 당신이 이해해 주면 좋겠습니다, 쇼 양. 그리고 리스 씨는 본인의 넘버 일로 바쁩니다."
절뚝이며 걸어가 그 날 두 번째 넘버의 사진을 유리판에 조심스럽게 붙이며 핀치가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내가 존과 역할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요 -?"
건물의 로비를 빠르게 지나쳐 상담사의 사무실로 향하면서 쇼가 물었다.
"전 단지 리스 씨가 혼자서 그 일을 해결하는 것을 선호할 뿐만 아니라 리스 씨에게 더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첫 번째 넘버의 사진을 보며 핀치가 설명했다.
그 말에 쇼가 씩씩댔다. 존과 그의 덜떨어진 로맨티시즘이란. 그녀가 이번 건은 루트와 함께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참이었다.
"전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나를 향수 판매원으로 만든 것보다 날 더 화나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정말 자기 자신을 뛰어넘었네요, 핀치."
"그 가짜 신분들은 모두 머신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습니다, 쇼 양. 이번 넘버도 그렇고요."
이번 사건의 세부사항을 되짚어가며 해롤드가 타일렀다.
"마를레나 쉬츠. 수준 높은 결혼 상담사이고 파산 신청없이 그녀의 상담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한 부부들만 받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기록은 지금까지는 깨끗하기 때문에 머신이 그녀의 넘버를 준 이유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그렇기에 그로브즈 양과 쇼 양의 잠입이 필요한 거고요. 아마 두 분이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상담사의 사무실 앞에서 마침내 루트와 마주한 쇼에게 이어피스를 통한 해롤드의 설명이 들려왔다.
"안녕 자기. 반지 잊어버리지 마." 쇼에게 백금 반지를 건네주며 루트가 활짝 웃었다. 쇼는 어느 정도 루트의 기벽에 적응한 편이지만, 루트가 역할에 심취한다는 것은 쇼까지 그 놀이에 끌려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엇보다도, 쇼는 루트가 어떻게 이 백금 반지들을 구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쇼는 벌써부터 이 잠입에 질려버린 참이었다.
"퍼스코랑 하는 게 차라리 나았겠다."
의사의 넓은 사무실로 들어가는 루트를 따라가며 쇼는 혼자 중얼거렸다.
8분의 침묵. 결혼 상담이란 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군. 그녀와 루트가 앉아 있는 푹신한 소파의 팔걸이를 두드리고 있는 쇼는 이보다 더 지루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상담사를 한 마디로 정리하려는 참이었다. 상담사는 전혀 가해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루트는 완벽한 아내를 연기하며 천사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입만 안 열면 말이지.
"먼저 말씀해보실래요?"
둘 중 아무도 상담을 시작하려는 기미가 안 보이자 상담사가 쇼를 쳐다보며 한 말이었다.
수긍하려는 찰나, 자신이 아내 연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린 쇼였다.
"아뇨."
방 안의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며 쇼가 예의바르게 대답했다.
"이런 상황이 부담스러우실 거라는 걸 압니다만, 한 시간에 3천 달러를 지불할 정도면 정말 해결을 하고 싶으신 것 같네요."
상담사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한 시간에 얼마라고?!
"쇼 양, 당신은 예일대학교를 나온 부유한 형법 전문 변호사라는 것 염두에 두세요. 그럼 당신이 합리적으로 이 상담을 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쇼의 이어피스를 타고 해롤드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러나 쇼는 정신과 의사에게 이야기 한 번 하려고 사람들이 이만큼 돈을 지불한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고, 그래서 언제라도 상담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 루트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 밖엔 할 것이 없었다.
"사실 제가 먼저 시작하고 싶네요, 의사 선생님." 쇼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루트가 명랑하게 말했다.
"우린 2010년에 결혼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소원해지자 친구 한 명이 당신을 찾아가보면 우리가 애초에 왜 결혼했는지 알 수 있을거라고 제안하더군요."
쇼에게 귀여운 미소까지 지으면서 이야기를 지어내며 루트가 밝게 웃었다.
하지만 그건 쇼가 견딜 수 없는 정도였고, 그녀는 자동적으로 눈을 굴렸다.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아시겠죠?"
쇼의 짜증에 화난 척을 하며 루트가 설명했다.
"사민, 당신은 왜 부인께 짜증이 난 거죠?"
젠장.
"어- 그러니까-" 분명히 해롤드가 이걸 즐기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며 쇼가 더듬거렸다.
"그녀는 가끔씩 절 무방비인 상태에서 놀라게 할 때가 있어요." 사전통보도 없이 루트가 테이저를 들고 자신의 집에 나타났던 걸 떠올리며 쇼가 간신히 대답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이 사람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요. 충동적으로 일을 하죠. 그리고 그런 건 종종 절 피곤하게 만들어요." 자세를 고쳐 앉으며 50분이나 이 짓을 더 해야 한다는 걸 자각한 쇼가 대답했다.
그 와중에 루트는 여전히 미소 짓는 얼굴로 쇼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아내가 이상한 짓을 벌이지 않았다는 걸 일도 내팽겨치고 쫓아가서 확인해야 하니까요."
루트에게 가려고 자전거로 주를 가로질렀던 것을 떠올리며 쇼가 말을 이었다.
"자, 어거스타, 그럼 당신 의견을 좀 말해볼까요?"
쇼는 루트의 가명에 눈을 굴리지 않으려 온힘을 다해야 했다. 이름 고르는 재주가 있는 여자였다.
"사민이 누구와 잘 지내는 데에 능력이 있는 건 아니에요."
루트가 쇼 하나 때문에 가짜 결혼 놀이를 실패할 수는 없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끼어들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제 말은, 그녀가 선천적으로 다정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죠, 전 결혼할 때부터 그건 알고 있었어요."
상처받은 아내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며 루트가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가끔 가다 한 번만이라도 저를 위해서 무엇을 했다는 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 힘든 건가요? 일을 위해서라든지, 개를 위해서라든지 둘러대는 것 대신 말이에요. 제가 정말 개만도 못한건가요?"
"와, 정말 거기에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상담사가 달랬지만 쇼는 이미 두 여자가 자신에게 대항해 연합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두 손을 내던지듯이 들어버렸다.
"정말- 믿을 수가 없군!"
쇼는 자신이 이번 상담에서 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해병대를 제대한 나지만 내 생애 제일 힘든 60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