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공학개론 우르크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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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공학개론 우르크대학교

“우르크대에 견학 온 것을 환영한다 제군들!”

 

햇살들이 담벼락의 담쟁이덩굴 잎사귀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벽돌 틈에 섞인 모래들이 반짝이는 빛을 냈다.

칼데아 고등학교의 우르크대 견학일, 호기심 어린 학생들의 눈빛은 어느 괴상한 동물 잠옷의 인물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이 몸은 도시공학부 조교 재규어맨! 호랑이가 아니고 재규어맨이니까 명심하도록! 이 몸이 오늘 여러분을 캠퍼스 곳곳까지 안내해주겠다냥~”

 

“동물 잠옷…? 선배, 저 사람 진심일까요?”

“왠지 위험해 보이니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진 말자.”

 

1학년생 마슈와 2학년생 리츠카를 포함한 학생들이 웅성거리자 재규어맨은 주의를 다시 모으려고 헛기침을 한번 했다.

학우들과 교직원들이 지나다니는 길목 한 가운데서 재규어라고 주장하는 호랑이 무늬 동물 잠옷을 입은 채 고등학생들을 인솔하고 있지만 전혀 민망함을 느끼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변을 지나다니는 이들은 ‘또 시작이군’ 이라거나 그러려니 하는 미미한 눈길을 한번 주고 별다른 반응 없이 지나갈 뿐이었다.

 

“그럼 우리 오늘 일정 말인데~ 중앙도서관부터 들를 예정이고 거기에서…”

 

일순간, 가까운 곳에서 와 하고 터져 나오는 함성,

모두가 근원지로 고개를 돌리자 언덕 아래 야외 운동장에서 축구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축구팀으로 유명한 우르크 대학, 이른 오전임에도 관중석은 구경꾼들로 가득 차 있었고,
학내 연습경기임에도 운동장의 열기는 잠잠했던 공기를 화사하게 바꿀 정도로 뜨거웠다.

호기심 많은 고등학생들은 난간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매달렸다.

하프라인 근처, 황금빛 유니폼의 7번 선수가 볼을 잡자마자 묵직한 긴장감이 감도는 장면이 훤히 보였다.

인솔하는 학생들의 온 관심에 경기에 쏠리자 재규어맨은 지겹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 참, 결국 이렇게 되는구먼, 제군들! 위험하니까 너무 바짝 붙지 말도록!”

재규어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칼데아고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더 넓은 시야를 위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린 위에서 역동하는 선수들을 눈으로 좇았다.

 

“저 사람 길가메시래. SNS에서 봤어.”

 

등번호 7번 금발의 남성은 다부진 다리로 잔디를 박차며 상대 미드필더들을 제꼈다. 한 발씩 뻗을 때 마다 그라운드에 깊게 패인 자국이 남고 이파리 조각과 흙먼지가 튀어 오른다. 공을 발 끝에 매단 듯한 자유로운 돌진. 한낮의 태양을 묵살하듯 붉게 타는 눈동자와 마주친 선수들은 저도 모르게 위축되었고, 찰나마다 그 기세에 밀려 힘을 빼고 머뭇거렸다. 거세게 돌진하는 역동과 강인함의 덩어리는 맞서는 이를 압박감으로 짓누르다 못해 그 마음 속에 일종의 경이감마저 끓게 했다.

뒤이어 정신을 차린 풀백과 센터백이 동시에 달려들자 길가메시가 어딘가로 눈빛을 보내며 차낸 빠르고 단호한 롱패스는 필드를 가로로 가르며 날았다. 날카로운 마찰음이 공기를 긋는 한 순간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는 멈췄고, 마치 레이저를 쏜 듯한 박력과 깨끗함에 관중들은 절로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긴 초록 머리를 하나로 묶은 선수가 홀연히 뛰어올라 반대편에서 거세게 날아오던 머리 하나 높이의 패스를 받았다.

등 번호 10번. 마치 ‘잘 받았어’라는 시선을 보내듯 상쾌하게 눈짓하는 연둣빛 눈동자.

그가 공을 받아 사이드라인 바로 직전에 착지해서 다음 스텝을 구를 때 까지도 달아오른 환호성은 그치지 않았다. 반면에 그 선수가 힘차게 내딛는 발돋움들은 같은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이 귀를 기울여도 그 소리를 듣기 힘들 만큼 사뿐하고 가벼웠다.

재빠르게 뒤바뀐 진형과 기다란 머리칼의 잔상만 겨우 남기며 현혹해오는 10번 공격수의 움직임에 스토퍼는 결국 갈피를 잃고 미끄러졌다. 마치 춤추듯이 천진한 미소를 짓는 10번은 공을 차올리며 사뿐히 뛰어올라 그를 넘었고, 오프사이드를 아슬아슬하게 앞둔 순간 빠른 턴으로 조준한 뒤 골대를 향해 슛을 쏘았다.

공을 제자리에 들어가게 한다기보다 시간을 멈추도록 하는 발길질 같았다. 그 한 시점에 머문 수많은 시선들은 차마 공을 따라가지 못하고 아득한 전율을 안겨주는 그 몸짓에 머물렀다.

 

나부끼는 녹발을 바라보는 찰나, 그를 바라보느라 모두가 잊고 있었던 골망이 뒤늦게 출렁이는 소리를 냈다.

그라운드는 환호성으로 가득 차고, 7번이 달려온다. 그토록 날카로운 눈빛을 쏘던 얼굴에 천진한 미소를 띠며 10번과 하이파이브한다. 두 사람을 둘러싼 청량한 바람과 햇살 그리고 폰카메라 렌즈들. 유니폼 소매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는 등 사소한 움직임에도 관중석은 여진처럼 술렁거렸다.

 

문득 길가메시는 자연스럽게 언덕길 쪽을 올려다보았고, 난간 위에서 열광하던 칼데아고 학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뭐라고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위풍당당한 미소를 짓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듯 씩 웃어 보였고, 녹색의 사람도 그 맑은 눈동자로 이 곳을 한번 쳐다보고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대박… 마슈, 나 여기 오고 싶어졌어.”

리츠카가 두 손을 모으며 감탄하자 마슈도 옆에서 눈을 빛내며 거들었다

“선배가 그렇다면, 저도요! 저희 같이 열심히 노력해요!”

학생들의 황홀한 탄성에 재규어맨의 얼굴엔 뿌듯한 미소와 동시에 허탈한 찌푸림이 섞였다.

“축구 경기만 보고 바로 결정하는 거냣!!! 선수들이 다가 아니라고!! ”

 

-

 

“그러니까, 길가메시 군! 학생들에게 뭐라도 좀 대학다운걸 보여주지 않겠니? 어찌 됐든 자네가 도시공학부 원탑이니까 말이지~”

 

오후 시간, 각 학부 건물을 들러서 수업을 참관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고, 재규어맨이 높은 층고의 도시공학과 강의실에 학생들을 이끌고 들어서자 마자 제일 먼저 찾은 것은 낮에 본 그 금발의 선수였다.

그는 스튜디오 뒤편에 위치한 계단형 좌석의 맨 끄트머리에 앉아있다가 이름이 불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서며 “나 참, 성가시군” 이라곤 웃었다. 깔끔한 데님 셔츠는 그라운드에서의 황금빛 유니폼처럼 상체의 단단한 근육을 감싸고 있었다. 그 주위에 앉아있던 그들의 친구들은 그가 내던지는 자의식적인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단정한 코트 차림의 갈색 머리 여성도 있었고, 낮에 보았던 초록 머리카락의 선수도 있었다.

길가메시는 벽면에 빼곡한 도면들과 모형들을 지나,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느긋하면서도 힘찬 걸음으로 연단까지 내려온 후, AR 테이블탑을 조작해 스크린을 띄워 이런저런 자료를 탐색했다. LED의 차가운 조명이 그의 실루엣을 비추자 그는 마치 잘 만들어진 영상 촬영용 모델링처럼 보였다.

 

“그래서, 뭘 보여줄까? 수로 설계 모형 시연? 교통 솔루션 시뮬?”

“저번 공모전 수상작은 어때, 길?”

 

길가메시가 떠난 자리 근처에서 머리 뒤에 손깍지를 끼고 앉은 초록색 머리칼의 학우가 경쾌하게 그의 애칭을 불렀다.

운동장에서와 다르게 자연스럽게 풀어내린 긴 머리는 포근한 회색 니트 위로 흘러내렸는데, 오전의 햇살 아래에서도 그 미소는 눈부셨지만, 실내의 형광 조명에서도 연둣빛으로 감싸인 나른한 모습은 깨끗한 조개껍질처럼 빛을 발했다.

 

“그래 볼까. 한갓 꼬마 잡종들한테 인상을 주기엔 적절한 컨텐츠로군.”

“길가메시 군!! 그래도 연계고교 학생들인데 실례되는 말은 삼가시지!!”

 

길가메시 또한 시원스럽게 자신의 학우에게 답하자 재규어맨은 빠르게 무례를 지적했다. 그럼에도 그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당당하고 태평한 미소만을 지어 보였다.

“아아, 이 귀한 몸을 학생으로 모시는 주제에 네놈들은 학칙이 이렇느니 체면이 저렇느니 하며 꽤나 요구사항이 많아.”

 

재규어맨의 나머지 불평도 묵살한 채 길가메시는 하천 재생 프로젝트 아이디어 수상작에 대한 자료를 띄우며 설명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거만하지만 어딘가 빨려드는 면이 있는 길가메시의 PT에 집중했지만, 마슈 키리에라이트의 눈길은 좌석으로 향했다.

초록 머리의 산뜻한 미인이 거기에 앉아 길가메시를 가만히 바라보는 눈빛은 보통의 학교 친구가 서로에게 가질법한 친근함을 넘어선 그 이상의 어떤 섬세한 친애를 드러내는 듯했다. 그 부드러운 감정을 받치듯 올라간 입꼬리는 그를 예배당의 고아한 석상처럼 보이게 했고, 언제까지고 소중한 이를 지켜보고 있을 듯한 그 미소는 왠지 마음을 일렁이게, 동시에 차분하게 했다.

 

-

 

해가 넘어갈 때쯤 대학 탐방은 마무리됐다. 버스에 타야 할 때쯤 마슈는 가방을 뒤적이다가 낮에 챙겨온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같이 가야지!”

“선배는 오늘 과외가 있잖아요. 저 혼자 돌아갈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

“끄응… 알겠어,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야 해?”

 

저녁 노을이 비치는 캠퍼스는 낮에 보던 것과는 또 다른 풍경을 자아냈다. 저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도 있었고, 구기장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도서관이나 실습동 등의 건물들의 창문은 점점이 놓인 가로등과 함께 하나둘씩 불을 밝혔다.

 

축구장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지 조명이 켜지지 않아 어둑한 상태였다. 마슈는 언덕길을 지나가다가 벤치에 앉은 그 녹색 머리 인물을 보았다. 낮에 보았던 그 사람, 혹시 카메라에 대해 물어볼 수 있을까? 마슈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는 기척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어 마슈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곳이라 그런가? 왜 눈동자 색이 달라 보이지?'

마슈가 그런 생각에 빠져 멍하니 있는 동안 초록 머리의 사람은 일어서서 한 걸음씩 다가오며 마슈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뭐야?”

“엣…”

 

차가운 목소리, 아까의 온화한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전혀 다른 사람처럼 날 선 눈빛.

마슈는 당황한 마음에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해 질 녘의 바람은 어딘가 싸늘하게 느껴졌다.

 

“아…저… 물건을 잃어버려서… 그러니까, 카메라를…”

“그걸 왜 여기에서 찾아?”

그렇게 말하면서 마슈를 스쳐 지나가는 단호한 걸음걸이마저 그는 오늘 낮에 보았던 사람과 전혀 딴판으로 보였다. 낮의 그 미소는 어디로 간 걸까.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따라와. 학과 사무실은 이쪽이니까.”

“네…넷!”

 

-

 

재규어맨은 책상 한 쪽에 레포트 자료를 밀어두고 컵라면을 먹던 와중에 마슈와 그가 들어오자 재빨리 책상 아래로 젓가락과 음식을 숨겼다

 

“아하하, 무엇을 도와줄까냐.”

“냄새가 안 날 거라고 생각해? 얼빵하긴…”

 

재규어맨은 머쓱하게 웃다가 그의 뒤에서 쭈뼛거리며 나타난 마슈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라~? 낮에 왔던 칼데아고 학생?”

“뭘 잃어버렸다는데.”

“저, 그게…”

 

재규어맨이 마슈의 사정을 듣는 동안 녹색 머리의 사람은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돌아서서 문을 쿵 닫고 나갔다. 얼떨떨하게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슈에게 재규어맨은 카메라를 건네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저 녀석은 신경 쓰지 마~ 그저, 흐음 뭐랄까, 가끔 좀 퉁명스러울 때가 있다고 해야 하나.”

‘좀?’ 마슈는 속으로 되물었다. 재규어맨은 마슈가 카메라를 돌려받으려는 손을 꼭 감싸 쥐었다.

 

“그래도 우리 학교에 와줄 거지? 기다리고 있겠다냐~”

“…재학생 태도가 달라졌다고 입시 목표를 바꾸진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