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er your Fxxx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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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er your Fxxx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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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AU, 아종성배전쟁 이후, 발렌타인데이ENG : https://archiveofourown.org/works/63845380/chapters/16372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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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엘키두가 자신의 전 마스터와 합심해서 수제 초콜릿을 만드는 과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초콜릿은 어두운 색이니까, 너무 탔을 때에도 잘 구분이 안 가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저로서는 영문을 모르겠어요."

 

테이트가 등 뒤로 리본을 예쁘게 매준 흰색 앞치마에, 긴 초록색 머리카락을 잘 묶어서 안에 쏙 넣은 동그란 위생 모자. 팔꿈치 위쪽까지 단정하게 걷은 셔츠. 말끔하게 베이킹 복장으로 차려입은 엘키두가 잘 녹은 밀크초콜릿처럼 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상황을 해설하고 있다 한들, 분명 테이트의 주방은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테이트가 콜록거리며 창문을 열고 환풍기를 트는 동안 엘키두는 그녀의 태블릿에 켜진 레시피를 찬찬히 다시 읽어보았다.

 

"저기, 테이트."

"네, 엘키두?"

"숫자 뒤에 °F라는건 뭐야?"

"...아앗!! 섭씨랑 화씨를 헷갈려버렸어요!!"

 

테이트가 평소에 유지하던 반듯하고 똑 부러지는 미소는 오래된 고전 레시피와 현대의 측정 단위 사이에서 한없이 무너져내렸다. 머리를 감싸 쥔 채 좌절하는 것도 잠시, 그녀는 원래의 정돈된 태도로 돌아와서 태연하게 다음 시도를 선언했다. 엘키두 또한 초콜릿 완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계속해서 같이 나아가기로 했고, 두 번째 템퍼링에서는 각자가 의욕 있게 열심히 초콜릿을 저어버리는 바람에 기포가 가득한 초콜릿이 만들어져버렸다.

엘키두는 보글보글한 초콜릿을 입에 하나 넣어 맛을 보았다.

 

"이건... 나름대로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식감이 독특하고 부드러워."

"으음... 하지만 역시 너무 서툴러 보이고..."

 

그리하여 거품 초콜릿은 뒤로 제쳐두고 시작한 세 번째 시도에서는 테이트가 실리콘 몰드를 뒤집은 채 초콜릿을 부어버리는 바람에 초콜릿이 테이블 위로 흘러넘쳤고, 네 번째 시도에서는 오히려 함께 수다를 떠는 데에 정신이 팔렸다가 계속 반죽을 저어야 하는 걸 깜빡했기에 왠지 뿌옇고 오돌토돌한 초콜릿이 완성되어버렸다. 실패작을 들키지 않게 재빨리 서로의 입에 넣어버리고 시작한 다섯 번째 시도. 잘 녹인 초콜릿을 몰드에 붓기 직전 엘키두는 뜬금없이 새로운 주장을 내비쳤다.

 

"와인을 넣고 싶어."

"갑자기요?"

"길은 와인을 좋아하니까."

"지금 단계에서? 하지만 어떻게 하죠?"

"직접 넣으면 되지 않을까?"

 

물론 일이 그렇게 간단할 리 없었고, 텁텁한 적갈색 죽이 완성되었다.

전 마스터와 전 서번트는 주방의 난장판을 눈앞에 두고 의자에 무너져내린 채 식은 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카락과 앞치마, 팔뚝과 뺨은 온통 설탕이나 파우더, 초콜릿이 남긴 얼룩으로 가득했다.

 

"엘키두."

"응, 테이트."

"가게에서 사는 게 어떨까요?"

 

엘키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테이트를 바라보며 맑고 화사하게 웃었다.

 

"넌 포기가 빠르구나."

"전혀 빠르지 않은 것 같죠? 지금까지 사용한 재료값만으로 이미 열 상자 샀을 것 같고."

 

테이트는 구석에 치워둔 거품 초콜릿, 그리고 두 사람의 입속에 집어넣고도 남은 거친 초콜릿을 손으로 가리켰다.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우리의 역량은 저기까지."

"무척 냉정하네."

"우리 둘의 마음을 이 이상의 좌절로부터 지키려는 거죠."

 

테이트가 가리키는 실패작들을 바라보던 엘키두는, 변치 않는 씩씩하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그녀를 돌아보았다.

 

"난 좌절 같은 것은 딱히 하지 않아, 테이트는?"

"좌절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그런가..."

 

지쳐 보이는 테이트를 옆에 가만 두고, 엘키두는 엉망진창이 된 손을 조리대 위로 뻗어 두 종류의 이상 초콜릿을 손끝으로 집어 든 뒤 하나씩 관찰해보았다. 테이트는 양손으로 턱을 괸 채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렇게 제안했다.

 

"그거, 에어레이티드 초콜릿이라고 부르죠, 그 옆은 러스틱 초콜릿. 대충 그런 장르가 있어요."

"그렇게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거였어?"

"물론 완전히 엉터리지만, 길가메시 폐하께서는 엘키두가 만든 거라고 하면 뭐든 받아줄 것 같고."

 

엘키두는 러스틱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어보았다. 서투른 초콜릿은 역시 입안에서 잘 녹지 않았다.

 

"길이 그렇게 만만치는 않을 거야. 의기양양해져서 시끄럽게 웃어댈걸."

"그런가요."

"산라는 어떨 것 같아?"

 

엘키두가 무심하게 던진 말에 테이트는 일시정지당했다. 그리고 수 초 후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감싸며 앞머리를 비비적거리자 엘키두가 단단하게 땋아준 은색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초콜릿 가게에 같이 갈래요?"

"응, 그러면 나도 제안이 있어."

 

테이트가 피곤한 표정으로 엘키두를 올려다보자 엘키두는 여전히 반짝이는 미소로 답했다.

 

"목욕용품 가게에 같이 가줄래? 찾는 게 있어."

 

-

 

발렌타인 데이 새벽부터 길가메시는 엘키두를 흔들어 깨워대다가 아예 포댓자루처럼 업어서 차에 집어넣었다. 익숙한 향과 포근한 탑승감이 느껴지는 산라의 세단 뒷좌석에서 엘키두의 잠이 깊어지나 싶던 찰나, 길가메시는 엘키두를 다시 꺼내서 팜보로 공항으로 들고 들어갔다. 터미널, 라운지, 활주로까지 궤짝을 운반하듯이 엘키두를 옮긴 길가메시가 마침내 비즈니스 제트의 리클라이닝 시트에 그를 안착시켜놨을 때에도 엘키두는 곤히 잠든 채 굳이 깨지 않았다.

이륙 후 서너 시간 정도가 경과하자, 창밖에서부터는 구름 너머 햇살이 기내로 비추어 들어왔다. 조용히 누워서 숨을 고르던 엘키두가 연둣빛 속눈썹 사이로 실금처럼 눈을 떴을 땐, 어느새 사하라 사막의 빛바랜 모래색이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었다. 나른한 한숨 소리를 뱉으며 고개를 돌리자 옆자리에서는 길가메시가 엘키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길? 난 분명 요란하지 않은 걸 부탁했어,"

"아아━, 실체를 보기 전까지는 걱정 말고 기대하도록."

 

엘키두는 미소가 득이만면한 길가메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는 그가 또 무슨 희한한 일을 저질러놓았을지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 약간의 근심이 한 데 모여 가볍게 흔들렸다, 한 편 길가메시는 그저 엘키두의 좌석에 손을 짚은 채 싱글벙글하니 웃으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될 대로 되겠지, 엘키두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낮고 일정한 엔진 소음, 뿌옇게 흐려진 사막과 하늘의 경계, 조용한 기내 환경이 함께 어우러져 잠깐의 평화를 도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트 비행이 끝난 후에는 헬기 탑승이 이어졌다.

엽서 같은 평온은 회전익이 공기를 쥐어뜯는 소리와 함께 깨졌다.

한참 동안 이어진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음 너머로 보이는 것은 넓고 웅장한 초록의 숲.
기체 아래로 잎사귀와 먼지, 열기와 습기, 이국적인 향이 섞인 공기가 창 너머로 밀려들 듯 다가왔다.

어느 지점에 멈춰서서 헬기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선회하기 시작했다.

엘키두는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이건?"

"후후후, 드디어 도착했군. 자, 보거라, 친우여!"

 

길가메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와하하 웃으며 엘키두 옆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팔을 요란하게 창밖으로 뻗었다.

 

"네녀석이 보고 있는 건— 단순한 카카오 농장이 아니다. 이 영웅왕이 직접 설계한, 사막을 관개해서 지은 초콜릿의 정원! 그리고 이 몸의 일생에서 단 하나뿐인 친우의 이름을 이 농장에 붙였느니라!"

"제정신이야, 길?"

"설마 생산수단을 사치스럽다고 말하진 않겠지?"

 

하도 기가 막히다 못해 신기하다는 듯이 그저 웃으며 엘키두는 카카오 농장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고, 길가메시는 의기양양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농장이라면 마땅히 수완 좋게 경영해서 품질과 생산량을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법, 그것을 통해 수익을 올려 투자 비용을 능가한다면 이보다 알뜰한 자원은 달리 없을 터! 즉, 사치와는 정 반대편에 있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도다! 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이 몸이 영민하다는 칭찬은 아끼지 말도록."

 

좌측의 숲 줄기는 트리니타리오 품종이라느니, 유묘를 키우기 위한 온실이라느니, 창고는 고순도 발효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느니 하는 주구장창한 설명을 들으며 엘키두는 농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옅고 짙은 녹음, 이파리의 광택들, 질서와 생명, 벌써 조그만 열매를 맺으려 하는 가지들, 땅의 냄새.

 

"저기, 길. 이제 더 이상 카카오를 키우기 힘든 기후라는 뉴스 들었어?"

"아아? 이 몸은 그런 사소한 한계 따위에 개의치 않는다. 장해가 있다면 어떻게든 해답을 찾으면 될 일. 인류 문명의 태초를 연 이 몸에게, 그런 사사로운 지구의 사정 따위 고난조차 되지 않는다!"

 

헬기는 천천히 저공비행을 이어갔다. 그 아래에서 갓 태어난 초록의 농장은 불안할지언정 고요하고 생생한 땅의 숨결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고층 빌딩 사이를 휘몰아치는 도시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촉촉한 바람이 농장을 둘러싸 하늘로 불어온다.

 

"멋대로 만들어놓고선, 참 대단한 언변이야."

"뭐어, 그리 정 없이 말하지 마라. 네녀석의 이름을 붙였다는 건. 이제부터 이 농장은 네 것이기도 하다는 뜻이니까."

 

엘키두는 농장 사이 그리고 그 아래로 흐르는 커다랗고 미세한 물줄기들을 지켜보았다. 관개된 지하수의 흐름부터, 어린 묘목의 가지들을 타고 흐르는 아주 여린 움직임들까지. 해는 높이 떠 물줄기들을 비추어 빛냈다. 햇살은 따스하게 그 나무들을 감싸 안거나, 혹은 선연하게 정렬된 생명들을 태울 것이다. 아주 어두운 색은 너무 탔을 때 잘 구분이 안 되겠지.

아주 오래 전, 한 야수가 황야에서 태어나 숲과 들을 떠돌다 마침내 문명으로 이끌려왔을 때, 강 근처의 비옥한 지역에 있던 어느 고대 도시에 도착했었다. 그 곳에서 처음 본 정원이라는 것은, 인간의 손으로 물을 끌어들여 생명을 채우는 기적. 유프라테스의 강물이 도시를 감싸고, 그 물줄기를 따라 꽃과 과일, 곡식들이 자라나던 찬란한 모습.

엘키두는 곁눈질로 길가메시를 바라보며 늘 그랬던 것 처럼 따스히 미소 지은 뒤, 다시 물줄기의 소용돌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뿌듯하게 긴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길가메시는 다시금 습관처럼 엘키두의 허리를 안은 뒤 그 목덜미에 코를 묻고 녹색 머리카락의 향을 가득 들이켰다.

 

그리고 와사비 냄새에 몸부림치다가 헬기에서 떨어질 뻔한 것을 엘키두가 사슬로 겨우 붙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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